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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주 끄리쉬나의 출현

한때 사실은 악마이지만 왕족으로 가장한 여러 왕의 불필요한 방위력으로 세상에 부담이 가중되었다. 그때 온 세상이 동요했고 이 지구의 주재신, 부미(Bhūmi)가 주 브라흐마(Brahmā)에게 악마적인 왕들 때문에 그녀가 겪는 불행을 말하려고 찾아갔다. 부미는 소의 형태를 띠고 눈물을 흘리며 주 브라흐마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사별했고 주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려고 울고 있었다. 그녀는 지구의 불행한 입장을 이야기했고 이것을 들은 후, 주 브라흐마는 몹시 분개하며 즉시 주 비쉬누가 머무는 우유의 대양을 향했다. 주 브라흐마는 주 시바를 선두로 모든 하위신(demigods)을 동반했고 부미 또한 그들을 따랐다. 우유의 바닷가에 도착했을 때 주 브라흐마는 이전에 초월적 멧돼지의 형상으로 지구를 구하신 주 비쉬누를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베다 만뜨라 안에는 뿌루샤 숙따(Puruṣa-sūkta)라고 하는 특별한 종류의 기도문이 있다. 일반적으로 하위신들은 최고인격신 비쉬누께 경배 올릴 때 뿌루샤 숙따를 구송한다. 위 내용을 통해 각 행성의 주재신은 자기가 통치하는 행성에 어떤 문제가 있을 때면 이 우주의 가장 높은 신 브라흐마를 언제든 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브라흐마는 지고한 주 비쉬누께 다가갈 수 있지만 그를 직접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유의 바닷가에 서서 볼 수 있다. 이 우주 안에는 스베따드비빠(Śvetadvīpa)라고 하는 행성이 있고 거기에는 우유의 대양이 있다. 이 지구에 사해가 있는 것처럼 여러 베다 문헌을 통해 다른 행성들에도 다양한 바다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곳에는 우유 바다가 있고, 또 다른 곳에는 기름 바다, 또 다른 곳에는 술 바다, 그리고 다른 다양한 종류의 액체로 된 바다도 있다. 뿌루샤 숙따는 하위신들이 최고인격신 끄쉬로다까샤이 비쉬누를 달래고자 바치는 표준 기도문이다. 그는 우유의 대양에 누워 계시므로 끄쉬로다까-샤이 비쉬누(Kṣīrodaka-śāyī Viṣṇu)라고 불린다. 그는 최고인격신이고 그를 통해 이 우주 안에 모든 화신이 나온다.

모든 하위신이 뿌루샤 숙따 기도문을 최고인격신께 바친 후, 그들은 분명 어떤 대답도 듣지 못했다. 그러자 주 브라흐마가 명상하려고 앉았고 거기에 주 비쉬누께서 브라흐마에게 메시지를 전송했다. 그 후 브라흐마는 그 메시지를 하위신들에게 전파했다. 그것이 베다 지식을 받는 시스템이다. 베다 지식은 먼저 최고인격신에게서 브라흐마의 가슴을 통해 전해진다. 스리마드 바가바땀 초반부에 말한 것처럼 “떼네 브라흐마 흐리다 야 아디-까바예(tene brahma hṛdā ya ādi-kavaye)”, 베다의 초월적 지식은 주 브라흐마의 가슴을 통해 전해진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오직 브라흐마만 주 비쉬누께서 보내신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었고 그가 다른 하위신들에게 즉각적인 조치를 위해 이 메시지를 전했다. “최고인격신이 당신의 가장 높은 능력과 함께 지구에 아주 가까운 시일 내로 현현하실 것이고 지구에서 당신이 악마를 없애버리고 헌애자들을 확립하는 임무를 수행하며 머무시는 동안 하위신들도 그곳에서 당신을 보조하며 머물러야 한다. 그들 모두 당장 주께서 현현하실 야두 왕조 가문에 출생을 맞아야 한다. 최고인격신 끄리쉬나 당신께서 몸소 바수데바의 아들로 현현하실 것이다. 당신의 출현이 있기 전, 모든 하위신은 그들의 부인들과 함께 주께서 당신의 임무를 수행하시는 것을 보조하기 위해 세상의 다양한 경건한 가문에 나타나야 한다.” 여기에 쓰인 단어는 바로 “땃-쁘리야르탐(tat-priyārtham)”인데 이 말은 하위신은 주를 즐겁게 하려고 지구에 나타나야 한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 하면 주를 만족시키려고 사는 생명체는 누구나 하위신(데바)이다. 주 끄리쉬나의 전체적 부분이며 당신의 수많은 후드(덮개)를 뻗으시어 우주 행성들을 유지하시는 아난따(Ananta)도 주 끄리쉬나의 출현에 앞서 지구상에 현현하실 것이라고 하위신들은 더 공지 받았다. 모든 속박된 생명체를 사로잡는 비쉬누의 외적 능력(마야) 또한 지고한 주의 명령으로 당신의 목적을 수행하고자 나타날 것이라고도 공지 받았다.

모든 쁘라자빠띠(prajāpati, 우주 인구의 조상)의 아버지인 주 브라흐마가 부드러운 말로 부미는 물론이고 모든 하위신에게 지시하고 달랜 후, 자신의 행성, 가장 높은 물질적 행성인 브라흐마로까로 떠났다.

야두 왕조의 대표는 슈라세나(Śūrasena) 왕으로, 마투라시와 그의 이름을 붙인 슈라세나 지방이 있는 나라 마투라(Mathurā)를 통치하고 있었다. 슈라세나 왕의 훌륭한 통치 덕분에 마투라는 야두의 모든 왕이 통치하는 도시 중 수도가 되었다. 야두는 아주 경건한 가문이었고 마투라는 주 스리 끄리쉬나께서 드바라까(Dvārakā)에 사시는 것처럼 영원히 사시는 곳임을 알았기에 야두 왕조의 수도로 삼은 것이기도 했다.

먼 옛날, 슈라세나의 아들 바수데바(Vasudeva)가 데바끼(Devakī)와 막 결혼한 후, 자기 마차에 신부를 태우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데바끼의 아버지는 데바까로, 그는 딸을 아주 예뻐해서 혼수를 크게 준비해줬다. 그는 금으로 된 장비로 완전히 장식된 수백 대의 마차를 마련해줬다. 그때 우그라세나의 아들 깜사가 자기 여동생 데바끼를 기쁘게 하려고 자진하여 바수데바의 마차를 운전했다. 베다 문명에 따르면, 여자가 결혼하면 오빠나 남동생이 여동생이나 누나를 매부나 매형의 집으로 데려가 준다. 그 이유는 갓 결혼한 여동생이나 누나가 자기 가족과의 이별로 너무 외로워할 수 있어서 오빠나 남동생이 여동생이나 누나가 시댁에 갈 때까지 같이 가주는 것이다.

데바까가 준비해준 혼수는 다음과 같다: 금목걸이로 완전히 장식된 코끼리 400마리, 장식된 말 15,000마리와 마차 1,800대. 그는 또한 200명의 아름다운 소녀가 자기 딸을 따르도록 준비해줬다. 끄샤끄리야 결혼 시스템은 인도에서 여전히 지켜지는데 끄샤뜨리야가 결혼하면 신부의 어린 여자 친구들 수십 명이 왕의 집으로 함께 간다. 왕비를 따르는 이 무리를 하녀라고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왕비의 친구 역할을 한다. 이 관습은 태곳적부터 널리 행해졌고 적어도 주 끄리쉬나께서 출현하신 5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래서 바수데바는 그의 부인 데바끼와 함께 200명의 아름다운 소녀들을 데리고 집으로 갔다.

신랑 신부가 마차를 타고 가는 동안 다양한 음악 소리가 상서로운 순간을 나타냈다. 소라고둥과 나팔, 드럼, 케틀드럼 소리가 합쳐져 멋진 콘서트가 열리고 있었다. 그 행렬은 아주 기분 좋게 지나고 있었고 깜사는 마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하늘에서 기적 같은 소리가 진동하며 특히 깜사를 불렀다. “깜사, 너는 너무나 바보구나! 너는 네 여동생과 매부의 마차를 운전하고 있지만 이 여동생의 여덟 번째 아이가 너를 죽일 거란 사실을 모른다.”

깜사는 보자 왕조의 우그라세나 아들이었다. 깜사는 보자 왕조의 모든 왕 중 가장 악마적이라고 했다. 하늘에서의 그 예언을 듣자마자 깜사는 데바끼의 머리칼을 낚아채어 자기 칼로 그녀를 죽이려고 했다. 바수데바는 깜사의 행동에 깜짝 놀랐고 이 잔인하고 파렴치한 손위처남을 진정시키려고 합리적인 이유와 증거를 들며 다음과 같이 말하기 시작했다. “친애하는 형님 깜사여, 당신은 보자 왕조의 가장 유명한 왕이고 사람들은 당신이 가장 훌륭한 전사이며 용감한 왕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당신이 너무나 격앙되어 여자를, 그것도 당신의 여동생을, 그녀가 결혼한 이 상서로운 때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죽음을 왜 그렇게 두려워합니까? 죽음은 당신이 태어났을 때 이미 같이 태어났어요. 당신이 태어난 바로 그 날, 당신은 죽기 시작했어요. 당신이 25살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그 말은 당신은 이미 25년을 죽었단 뜻이에요. 매 순간, 매초, 당신은 죽고 있어요. 그런데 어째서 죽음을 그리 두려워해야 합니까? 죽음은 필연적입니다. 당신은 오늘 혹은 100년 후에 죽을 수 있어요. 죽음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두려워합니까? 사실 죽음은 현재 몸의 소멸을 의미합니다. 현재의 몸이 기능을 멈추자마자 다섯 가지 물질적 본성과 섞여 생명체는 현생의 작용과 반작용에 따라 또 다른 몸을 받아들입니다. 그것은 마치 사람이 길 위를 걷는 것과 같습니다. 걸을 때 한 발을 안전한 땅 위에 내디딘다고 확신할 때 다른 발을 올립니다. 마찬가지로 한 몸에서 다른 몸으로, 몸은 변하고 영혼은 윤회합니다. 곤충이 한 나뭇가지에서 다른 나뭇가지로 얼마나 조심히 옮겨가는지 보세요! 마찬가지로 생명체는 더 높은 권위자가 다음 몸을 정하자마자 자기 몸을 바꿉니다. 생명체가 이 물질계 안에 속박되어 있는 한, 한 물질적 몸에서 다른 물질적 몸으로 반드시 바꿔야 해요. 그 특정한 몸은 이생의 작용과 반작용에 따라서 자연의 법칙이 부여합니다.

이 몸은 우리가 꿈속에서 항상 보는 몸 중 하나와 똑같습니다. 꿈을 꾸는 동안 우리는 우리 정신 상태에 따라 다양한 몸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는 금을 본 적이 있고 산을 본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꿈속에서 우리는 이 두 생각을 혼합해 황금산을 봅니다. 때때로 꿈속에서 하늘을 나는 몸을 갖기도 하고 그때 우리는 현재의 몸을 완전히 잊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몸들은 변하고 있습니다. 한 몸을 가졌을 때 과거의 다른 몸을 잊습니다. 꿈을 꾸는 동안 우리는 아주 많은 새로운 몸을 갖기도 하지만 꿈에서 깨면 그 모두를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 물질적 몸들은 우리 심적 활동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 순간 우리는 과거 몸들을 기억해내지 못합니다.

마음의 본성은 깜빡이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어떤 것을 받아들이고 즉시 그 받아들인 것을 거부합니다. 받아들이고 거부하는 것이 다섯 가지 감각 만족의 대상(형태, 맛, 냄새, 소리, 감촉)과 접촉할 때 마음이 작용하는 과정입니다. 마음은 생각하는 동안 감각 만족 대상과 접촉하게 되고 생명체가 특정한 형태의 몸을 원하면 그것을 갖게 됩니다. 따라서 몸은 물질적 본성의 법칙에 따라 부여됩니다. 생명체는 한 몸을 받아들여 몸의 구조에 맞게 즐기거나 고통받으려고 이 물질계에 다시 나옵니다. 우리에게 특정한 형태의 몸이 없는 한, 전생에 물려받은 심적 성향에 따라 즐기거나 고통받을 수도 없습니다. 특정 형태의 몸은 실제로 죽음의 순간 우리 정신 상태에 따라 우리에게 부여된 것입니다.

태양과 달, 별과 같이 빛나는 행성은 물과 기름, 기(ghee)와 같이 다양한 종류의 저수지에 자기를 비춥니다. 투영은 저수지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입니다. 달은 물 위에 투영되고 물의 움직임이 달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실제로 달은 움직이고 있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정신적 조합으로 생명체는 다양한 몸을 획득하지만 실제로 그는 그러한 몸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나 환영(망상)으로 마야의 영향에 사로잡혀 생명체는 자기가 어떤 특정한 몸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속박된 삶의 방식입니다. 생명체가 현재 인간 형태의 몸 안에 있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는 자기가 인간 공통체에 속하거나 특정한 나라 혹은 특정 장소에 속한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는 자기를 그런 식으로 식별하고 불필요하게 또 다른 몸을 준비합니다. 그러한 바람과 정신적 조합이 다양한 몸의 원인입니다. 물질적 본성의 가리는 영향은 너무나 강력해 생명체는 어떤 몸을 갖든 만족해하며 기쁘게 자기를 그 몸과 동일시합니다. 그러므로 제발 당신의 마음과 몸의 명령에 압도되지 마시기를 권유합니다."

바수데바는 깜사에게 갓 결혼한 자기 여동생을 시기하지 말라고 청했다. 우리는 누구도 시기해서는 안 되는데 그 이유는 시기는 이 세상과 다음 세상에서 야마라자(죽음 후 벌을 주는 신) 앞에 설 때 두려움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바수데바는 데바끼를 대신해 그녀가 그의 여동생이라고 깜사에게 호소했다. 바수데바는 결혼이라는 상서로운 순간이라는 것도 호소했다. 여동생이나 남동생은 자기 아이처럼 보호해줘야 마땅하다. “전반적으로 매우 세심한 주의를 필요로 하는 상황입니다.” 바수데바가 이유를 들었다. “만약 당신이 데바끼를 죽이면 당신의 높은 명성은 허물어질 겁니다.”

이런 식으로 바수데바는 바른 지시 사항과 철학적 분별로 깜사를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깜사가 교류하는 자들은 악마 같아서 그는 진정하지 않았다. 그가 교류하는 자들이 악마적이어서 그가 아주 높은 왕족으로 태어났지만 악마였다. 악마는 어떤 좋은 가르침도 듣지 않는다. 그는 마치 결심한 도둑 같았다. 누군가 도둑에게 도덕적 가르침을 줄 수는 있지만 효과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본성이 악마적이거나 무신론적인 사람은 아무리 권위 있는 것이라도 어떤 좋은 가르침도 받아들이기가 몹시 어렵다. 그것이 하위신과 악마들의 차이점이다. 좋은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고 그런 식으로 자기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은 하위신이라고 부를 수 있고, 그런 좋은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을 악마라 부른다.

깜사를 진정시키는 데 실패한 바수데바는 자기 아내 데바끼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위험이 임박해 있을 때 현명한 사람은 그 위험한 상태를 가능한 한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지혜를 다해 노력해 보아도 그런 위험한 상태를 피할 수 없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자기 의무를 다하려고 노력해야겠지만 그 시도가 실패한다면 그 사람 탓이 아니다.

바수데바는 자기 아내에 관해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지금은 먼저 데바끼의 목숨을 구하자. 그런 다음 만약 아이가 태어나면 그때 어떻게 아이들을 구할지 생각하자.’ 그는 더 생각했다. ‘깜사가 생각하는 것처럼 미래에 깜사를 죽일 아이가 태어난다면 신의 뜻은 이해 불가하니 데바끼와 아이 둘 다 목숨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어떻게든 데바끼의 목숨을 구하자.’

훨훨 타는 불길이 숲속의 어떤 나무와 접촉해서 생겼는지 불확실하듯이 생명체가 어떻게 특정한 형태의 몸과 만나게 되는지 확실성이 없다. 산불이 나면 불길이 나무 한 그루를 덮치고, 바람의 영향으로 그 나무에서 다른 나무로 번져가는 것을 가끔 경험한다. 마찬가지로 생명체는 자기 의무를 수행하는 데 아주 신중하겠지만 여전히 다음 생에 그가 어떤 몸을 갖게 될지 알기는 몹시 어렵다. 마하라자 바라따(Mahārāja Bharata)는 아주 충실하게 자아 인식이라는 의무를 다하고 있었지만 우연히 사슴에게 일시적인 애정을 발전 시켜 다음 생에 사슴의 몸을 받아야 했다.

자기 아내를 어떻게 구할지 숙고한 후, 바수데바는 깜사가 가장 죄 많은 인간이었지만 무척 존중하며 말하기 시작했다. 가끔 바수데바같이 가장 고결한 사람도 가장 사악한 인간 깜사 같은 자에게 아첨해야 할 때가 있다. 그것이 외교적인 거래 방식이다. 바수데바는 마음이 몹시 상했지만, 겉으로는 미소 지었다. 깜사는 너무나 극악무도해서 바수데바는 파렴치한 깜사와 그런 식으로 이야기해야 했다. 바수데바가 깜사에게 말했다. “친애하는 형님 깜사여, 당신의 여동생이 당신에게 어떤 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점을 제발 고려해 주세요. 당신은 하늘에서 예언의 목소리를 들었기에 어떤 위험이 찾아올 거로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위험은 당신 여동생의 아들들에게서 나오게 되어 있고 지금 그들은 이 세상에 없어요. 그리고 누가 알아요? 미래에도 아들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어요. 이 모든 것을 고려해 보면 당신은 현재 안전해요. 당신의 여동생이 어떤 두려움의 원인도 아니에요. 그녀에게서 아들이 태어난다면 제가 약속하건대 적절한 조치를 위해 그들 모두 당신 앞에 제가 데려다 놓겠습니다.”

깜사는 바수데바가 명예를 걸고 한 약속의 가치를 알았고 그의 주장에 설득되었다. 지금은 자기 여동생을 죽이는 극악무도함을 멈추기로 했다. 그래서 바수데바는 깜사의 결정에 기뻐하며 그 결정을 칭찬했다. 이렇게 그는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후 매년 때가 되어 데바끼가 출산했다. 그렇게 그녀는 여덟 명의 사내아이와 딸 한 명을 낳았다. 첫째 아들이 태어났을 때 바수데바는 약속을 지키려고 아이를 즉시 깜사 앞에 데려갔다. 바수데바는 자기 명예를 건 약속을 지키는 데 아주 이름나 있었고 아주 고결한 성품을 지녔기에 그 명성을 유지하려고 했다. 비록 갓난아기를 깜사에게 바치는 것이 바수데바에게는 너무나 고통스러웠지만 깜사는 기쁘게 아이를 받았다. 그러나 깜사는 바수데바의 행동에 약간 동정심이 생겼다. 이 예는 아주 모범적이다. 바수데바처럼 위대한 영혼은 자기 의무를 다하는 동안 어떤 일이 생겨도 고통스럽다고 여기지 않는다. 바수데바같이 진정한 지성이 있는 사람은 주저함 없이 자기 의무를 수행한다. 반면, 깜사 같은 악마는 어떤 혐오스러운 행동을 하는 데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자는 인생의 어떤 괴로운 상태도 다 참아낼 수 있고, 지성 있는 자는 어떤 호의적인 상황을 기다리지 않고 자기 의무를 다하며 깜사 같이 극악무도한 자는 어떤 죄업도 마다하지 않으며 헌애자는 최고인격신을 만족시키고자 어떤 것도 희생할 수 있다고 한다.

깜사는 바수데바의 행동에 흡족해했다. 그는 바수데바가 약속을 지킨 것에 놀라 동정심을 느끼며 만족해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친애하는 바수데바, 당신은 내게 이 아이를 데려올 필요가 없어요. 나는 이 아이 때문에 위험에 처하지 않아요. 당신과 데바끼에게서 난 여덟 번째 아이가 나를 죽일 거라고 들었어요. 이 아이를 불필요하게 내가 받을 이유가 뭐가 있죠? 아이를 도로 데려가세요.”

바수데바가 첫 번째로 태어난 아이와 집으로 돌아갔을 때, 그는 깜사의 행동에 기뻤지만 깜사는 통제불가한 자임을 알아서 그를 믿을 수 없어 했다. 무신론자는 자기가 한 말에 확고할 수 없다. 감각을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은 자기가 내린 결정에 꾸준할 수 없다. 훌륭한 정치가 짜나꺄 빤디따는 “외교관과 여자를 절대 믿지 마라.”라고 했다. 제한 없이 감각 만족에 중독된 사람은 절대 충실할 수 없고 그런 자를 믿어서도 안 된다.

그때 위대한 성인 나라다가 깜사에게 왔다. 그는 깜사가 바수데바를 가엾게 여기고 그의 첫째 아이를 돌려보냈다는 정보를 들었다. 나라다는 주 끄리쉬나의 강림을 가속화하기를 무척 열망했다. 따라서 깜사에게 브린다반의 난다 마하라자와 다른 소치기 주민들과 그들의 부인들, 바수데바 쪽 사람들, 바수데바의 아버지 슈라세나, 그리고 야두 왕조의 브리쉬니 가문에 태어난 모든 사람과 그들의 친척과 그들을 옹호하는 자들 모두 실제로 하위신(데바)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나라다는 깜사와 깜사의 친구들, 그리고 자문가들 모두 악마이니까 그 모든 사람(하위신)을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악마들은 항상 하위신을 두려워한다. 나라다에게 여러 가문에서 하위신이 출현한 것을 들은 깜사는 즉시 몹시 불안해했다. 이미 하위신들이 나타났으니 주 비쉬누도 분명 곧 오리라는 것을 그는 이해했다. 그는 즉시 매부 바수데바와 여동생 데바끼를 체포하여 감옥에 가뒀다.

감옥 안에서 쇠사슬에 묶여 바수데바와 데바끼는 매년 남자아이를 출산했고 깜사는 아기마다 비쉬누의 화신으로 생각하고 하나 하나 죽여버렸다. 그는 특히 여덟 번째 아이를 두려워했지만 나라다가 방문한 후, 어떤 아이도 끄리쉬나일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따라서 그는 데바끼와 바수데바에게서 태어난 아이들 전부를 죽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깜사의 이런 행동은 이해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세계 역사 속에서 왕족 사람들이 자기 야망을 채우려고 자신의 아버지, 형제 혹은 전체 가족과 친구를 죽인 예를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깜사의 행위는 특별히 놀랄만한 것이 아닌데 사악하고 탐욕스러운 왕족 구성원은 자기들의 극악한 야망을 위해 누구라도 죽일 수 있다.

깜사는 나라다의 은총으로 자신의 이전 생애를 알 수 있었다. 그는 전생에 깔라네미라는 이름의 악마였고 비쉬누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지금은 보자 가문에서 태어나 야두 왕조의 치명적인 적이 되기로 했다. 끄리쉬나가 그 가문에 출현할 것이고 깜사는 전생에 죽임을 당한 것처럼 끄리쉬나께 죽임을 당하리라 몹시 두려워했다.

그는 먼저 자기 아버지 우그라세나를 감옥에 가뒀는데 그 이유는 그가 야두, 보자, 안다까 왕조 중 최고 왕이었기 때문이고, 그가 바수데바의 아버지 슈라세나의 왕국 또한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깜사는 자기를 그 모든 왕국의 왕으로 공포했다.

따라서 끄리쉬나 첫 장 “주 끄리쉬나의 출현”의 박띠베단따 주석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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